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만 제국/역사 (문단 편집) ==== [[코소보 전투]]와 발칸 & 아나톨리아 반도 장악 ====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으로 진출할 기회를 얻은 오스만은 1389년의 [[코소보 전투]]에서 [[세르비아 공국]]의 '라자르 흐레벨랴노비치(Lazar Hrebeljanović,1329~1389)'를 전사시키고[* 세르비아의 입장에선 비록 코소보 전투에서 패했으나 전투의 무대가 된 [[코소보]]는 오스만에 맞서 싸운 성지로 여겨졌는데, 전투 이후 오스만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알바니아계 민족이 하나둘 뿌리를 박아 알바니아인들의 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. 이는 수백 년 후인 [[1998년]] 벌어진 [[코소보 전쟁]]의 단초가 된다.], 세르비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. 1393, 1395, 1396년에는 각각 3개로 나뉘어져있던 [[불가리아 제2제국]]의 잔해들을 모두 병탄하는 위엄을 떨치며 발칸 반도의 패권을 장악하였다. 하지만, [[왈라키아]] 지방으로의 진출은 실패하는데, 이는 당시 [[왈라키아 공국]]의 [[보이보드]]였던 [[미르체아 1세]]가 '카라노바사 전투(1394)'와 '로비네 전투(1394)' 등에서 승리하면서 [[바예지트 1세]]의 튀르크군을 철퇴시켰기 때문이다. 물론 왈라키아 군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어 전투 후, [[미르체아 1세]]는 [[헝가리 왕국]]으로 도피(1395)하게 된다. 한편, 오스만의 세력이 나날이 강해져만가자 오스만을 막기 위해 서유럽 국가들이 [[헝가리 왕국]]의 왕, [[지기스문트]]의 주도로 니코폴리스 십자군을 결성하였으나, 오스만의 술탄 [[바예지트 1세]]는 1396년의 [[니코폴리스 전투]]에서 니코폴리스 십자군을 대패시키는 위엄을 보였다. 이 시기를 오스만의 1차 전성기로 본다. 이시기 오스만의 영토는 아나톨리아 대부분과 불가리아, 세르비아, 그리스 북부에 이르게 되었다. [[바예지트 1세]]의 별명이 이을드름(Yıldırım), [[터키어|튀르키예어]]로 '''뇌제(雷帝)'''였는데, '뇌제'라는 말은 지휘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성격이 불같았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